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르디난트 2세 (문단 편집) === [[합스부르크 제국]]의 야망과 프랑스의 참전 === 1635년, 신교도들과 프라하 평화 협정을 체결하면서 페르디난트 2세는 전쟁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다. 그러나 [[프랑스 왕국]]의 재상 [[리슐리외 추기경]]과 [[루이 13세]]가 전쟁에 직접 개입하기로 결심했다. 이 둘은 신성 로마 제국에서 합스부르크 왕조가 더 이상 강력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결국, 같은 가톨릭인 프랑스는 네덜란드, 스웨덴을 꼬셔 독일의 신교도를 도우러 가담했다. 이전까지의 개신교 동맹이 변경국가 아니면 신흥세력에 불과했다면, 프랑스와 스페인은 유럽의 진짜 강대국이었던 '''[[가톨릭]] 왕국'''들이었다. 이 덕분에, 가뜩이나 황제와 제후들간에 연속으로 전쟁을 겪었던 독일은 가톨릭 국가들의 싸움터가 되는 과정에서 매우 피폐해졌다. 앞선 세 차례의 전쟁에서 가톨릭 리그는 우위를 점했었지만, 4차 전쟁에서는 프랑스와 스웨덴을 감당하지 못하고 폭망한 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은 사실상 이름만 남은 허수아비 국가가 되었다. 하지만 페르디난트 2세 본인은 30년 전쟁의 끝을 보진 못하고 1637년에 사망했다.[* 사실 30년 전쟁 도중에 몇 번이나 전쟁을 끝낼 기회가 있었으나 페르디난트 2세의 고집으로 불씨가 되살아났다. 결국 신성 로마 제국은 계속된 전쟁으로 피폐해지면서 국력을 전부 소진하고 말아 종이호랑이가 된 셈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